출마의 변
안녕하세요.
미래당 인천시당 당대표에 출마한 안재호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함께 해주신 당원 및 지지자분들께 감사드리며 고난의 시기 함께 이겨가겠습니다.
미래당 창당부터 함께한 인천시당 대표직에 다시 도전합니다. 성과와 부족함을 펼쳐보다가 미래당 인천시당과 함께한 시간, 공간, 사람, 사건, 인연, 애틋함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감상에 젖게 됩니다. 아픔이 없고,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 구절이 떠올려집니다. 그동안 미래당 인천시당과 함께한 사랑, 눈물, 아픔을 보듬고 잔잔한 파도가 모래성을 무너뜨리듯이 변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미래당 인천시당을 사랑하고 아끼는 안재호 올림.
공약
온라인 당사 구축
- 그동안 물적, 인적 제약으로 당사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온라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온라인 당사를 구축하겠습니다. 시당 실무자들의 업무는 각자의 공간에서 진행을 하고 회의 및 모임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하겠습니다.
- 당사 유지비용, 이동 경비등을 절감 하겠습니다.
시도당 상임위활동의 정례화
- 상임위회의를 월 1회 정기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 회의록 및 의결사항을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하겠습니다.
당원과의 만남 년 2회 진행
- 당원과의 모임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산행, 차담, 역사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당원들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친목을 도모하겠습니다.)
성장과정 및 자기소개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기반 없이 서울살이를 꾸리셨습니다.
저와 누나 1남 1녀를 낳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리지 않고 일하시며 넉넉할 때도 있었고, 너무 어려워 불화도 일어나고 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20대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아주 어릴 적은 소심했고 학습성취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10대 중 후반에 부모님의 자영업이 벌이가 많아져서 과외를 받게 되었으며 이때 어머니의 요구로 학습 공부보다 세상살이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과외선생님은 당시 서울대생으로 사회적인 의식도 강하고 도덕적인 인격과 젊으며 청년의 활기가 넘쳐나신 분 이였습니다. 인품에 대한 흠모로 10대의 제 인품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셨고, 20대 때에도 근근이 찾아뵈며 조언과 격려를 받고 정치에 대한 뒷말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로 입당해서 19대 국회의원을 지내시다 3년 전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0대는 대학진학에 대한 미련이 없었고 일에 대한 집착이 강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저는 조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하여 고되고 힘든 업무에 치이면서도 회사에서 업무평가는 좋은 편으로 진급도 빠르게 겪고, 8년간 장기근무하면서 끈기가 키워졌습니다.
이때 직장을 다니며 직장 상사의 강압적인 권유에 전문대에 진학하여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고되게 보낸 것이 후에 직장과 봉사 활동을 병행하는 기초 근육이 되었습니다. 또 한 당시 직장이 이직률이 높은 곳이 였지만 8년간 장기근무한 경험은 지금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보내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직업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은 고되지만 일 자체가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서 어릴 적부터 부족한 감성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30대는 돈에 대한 집착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선배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취업하여 창업에 대한 희망을 키웠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고 머뭇거리고 방황하다 우연히 사회활동에서 봉사에 매진하며 보냈습니다. 이 인연으로 미래당을 함께 하게 되었고 정치에 대한 공부, 정당인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고, 선거 출마를 하며 지금의 정치열정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지금의 성격을 보면, 저는 안정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편이면서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매진하는 성격이 도드라집니다.
출마의 변
안녕하세요.
미래당 인천시당 당대표에 출마한 안재호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함께 해주신 당원 및 지지자분들께 감사드리며 고난의 시기 함께 이겨가겠습니다.
미래당 창당부터 함께한 인천시당 대표직에 다시 도전합니다. 성과와 부족함을 펼쳐보다가 미래당 인천시당과 함께한 시간, 공간, 사람, 사건, 인연, 애틋함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감상에 젖게 됩니다. 아픔이 없고,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 구절이 떠올려집니다. 그동안 미래당 인천시당과 함께한 사랑, 눈물, 아픔을 보듬고 잔잔한 파도가 모래성을 무너뜨리듯이 변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미래당 인천시당을 사랑하고 아끼는 안재호 올림.
공약
온라인 당사 구축
시도당 상임위활동의 정례화
당원과의 만남 년 2회 진행
성장과정 및 자기소개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기반 없이 서울살이를 꾸리셨습니다.
저와 누나 1남 1녀를 낳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리지 않고 일하시며 넉넉할 때도 있었고, 너무 어려워 불화도 일어나고 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20대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아주 어릴 적은 소심했고 학습성취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10대 중 후반에 부모님의 자영업이 벌이가 많아져서 과외를 받게 되었으며 이때 어머니의 요구로 학습 공부보다 세상살이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과외선생님은 당시 서울대생으로 사회적인 의식도 강하고 도덕적인 인격과 젊으며 청년의 활기가 넘쳐나신 분 이였습니다. 인품에 대한 흠모로 10대의 제 인품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셨고, 20대 때에도 근근이 찾아뵈며 조언과 격려를 받고 정치에 대한 뒷말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 당직자로 입당해서 19대 국회의원을 지내시다 3년 전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0대는 대학진학에 대한 미련이 없었고 일에 대한 집착이 강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저는 조리사를 직업으로 선택하여 고되고 힘든 업무에 치이면서도 회사에서 업무평가는 좋은 편으로 진급도 빠르게 겪고, 8년간 장기근무하면서 끈기가 키워졌습니다.
이때 직장을 다니며 직장 상사의 강압적인 권유에 전문대에 진학하여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고되게 보낸 것이 후에 직장과 봉사 활동을 병행하는 기초 근육이 되었습니다. 또 한 당시 직장이 이직률이 높은 곳이 였지만 8년간 장기근무한 경험은 지금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보내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직업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은 고되지만 일 자체가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서 어릴 적부터 부족한 감성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30대는 돈에 대한 집착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선배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취업하여 창업에 대한 희망을 키웠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고 머뭇거리고 방황하다 우연히 사회활동에서 봉사에 매진하며 보냈습니다. 이 인연으로 미래당을 함께 하게 되었고 정치에 대한 공부, 정당인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고, 선거 출마를 하며 지금의 정치열정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지금의 성격을 보면, 저는 안정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편이면서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매진하는 성격이 도드라집니다.